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유행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정신적, 심리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코로나19 관련 기사 댓글을 읽고난 뒤 기침이나 콧물 같은 감기 증상만 나타나도 코로나19에 감염된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는 경우 2주간 자가격리 중이거나,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짧게는 2~3일부터 길게는 2주간 집에서만 머무느라 심리적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TV와 신문, 온라인 등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뉴스와 정보가 넘치고 전염병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심각해지면서 불안이나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과도한 걱정이 단순한 심리적 위축을 넘어 정신적인 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유행했을 때도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호소한 사람들이 많았다.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소희 과장 연구팀이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대병원, 서울의료원, 단국대병원, 충남대병원 등 5개 병원의 메르스 감염 환자 63명을 대상으로 1년간 추적 관찰, 분석한 결과 이들 중 약 53.8%가 만성피로증후군(36.5%)과 일명 '트라우마'라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27%), 우울증(15%), 불면증(15%), 불안증(5.8%) 등 정신적인 문제를 하나 이상 겪었다. 약 1.9%는 자살 고위험군에 해당했다.


연구팀은 "감염자들이 완치 판정을 받고 메르스가 종식된 뒤에도 여전히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전염병 감염자들 중 고위험군에 대한 심리적, 정신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고 바이러스는 제거했지만 이때 발생한 정신적 고통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연구결과는 2017년 10월 '메르스 환자 코호트 연구 최종보고회'에서 발표됐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파력이 강한 신종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만큼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며 "최근 병원을 찾는 환자나 보호자 중에서도 비닐장갑과 비닐옷, 고글로 무장하거나 수 개월치 약을 미리 처방해 달라는 등 코로나19에 대해 과도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코로나19 노이로제'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코로나19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와 확률을 고려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인지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면 코로나19는 2m 밖 먼 거리에서는 전염이 잘 되지 않고, 바이러스가 묻은 물건을 혹시 만졌더라도 손을 씻으면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해 코로나19에 대한 과도한 생각을 떨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일부 강박장애 환자들은 밖에 나가면 세균에 오염돼 위험해질까, 하늘이 무너질까, 갑자기 벼락이 칠까 등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며 "이런 환자들에게도 우려하는 일이 일생 동안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객관적으로 인지하도록 도와 불안을 해소해준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현재 오랫동안 자가격리 또는 자체적으로 집에만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고립감으로 인한 우울증 위험도 크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찾으라"며 "원래 바깥에서 하던 취미를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새로운 음악이나 책에 집중하는 등 그동안 바삐 살면서 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누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감염자들과 늘 밀접하게 접촉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중국 우한대 혈액학과 연구팀은 우한 시내에 살고 있는 시민 248명과, 이곳 병원에서 감염자들을 밤낮 없이 치료해온 의료진 258명 등 총 506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심리 상태와 삶의 질 변화 등을 연구한 결과를 지난달 20일 사회과학 학술지 공개 사이트(SSRN)에 올렸다. 우한은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지역이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불안과 우울증, 삶의 질 등을 검사하는 데 쓰이는 다차원 척도 설문과 건강 관련 설문 등에 답하게 했다. 분석 결과 일반 시민들보다도 의료진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정신적으로 훨씬 더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증 환자를 돌보는 이들보다 폐렴 등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일수록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컸다.


연구팀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로부터 공감과 지원을 받을수록 우울증이 발생할 위험이 낮아졌다며, 코로나19 감염자를 돌보는 의료진에 대한 심리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 이정아 기자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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